단풍을 볼 수 없는 청년에 대한 이야기
단풍을 볼 수 없는 청년에 대한 이야기
유월의 일기
정유월(1938 - )
1947년
⟨6월 3일⟩
오늘 오빠랑 물에 들어갔다. 오빠가 나를 업어주었다. 물이 차가웠다. 아버지가 배 만드시는 것을 봤다. 나무를 깎으신다. 어머니가 저녁에 미역국을 끓여주셨다.
⟨6월 4일⟩
비가 왔다. 집에만 있었다. 오빠가 종이배를 접어주었다. 물웅덩이에 띄웠다. 배가 물에 떠간다.
⟨6월 7일⟩
날씨가 좋았다. 오빠랑 섬 끝까지 걸어갔다. 강물이 반짝반짝했다. 오빠가 돌을 던졌다. 나도 던졌는데 멀리 안 갔다.
⟨6월 10일⟩
오늘 아버지 배 만드시는 거 구경했다. 톱질 소리가 크다. 나무 냄새가 좋다. 오빠가 아버지 도와드린다고 했다. 아버지가 웃으셨다.
⟨6월 15일⟩
어머니랑 빨래했다. 강물에 손을 담갔다. 시원했다. 오빠가 멀리서 손 흔든다. 나도 흔들었다.
⟨6월 23일⟩
오빠가 물고기를 잡았다. 작은 물고기다. 어머니가 구워주셨다. 맛있었다. 오빠가 나한테 반을 주었다.
⟨6월 30일⟩
오늘로 유월이 끝난다. 오빠가 칠월에는 더 크게 자라라고 했다. 나는 오빠만큼 크고 싶다.
1948년
⟨4월 10일⟩
봄이 왔다. 꽃이 핀다. 오빠가 나를 업어서 용아머리 높은 곳에 있는 꽃을 보여줬다. 하얗다.
⟨7월 12일⟩
요즘은 날이 너무 덥다. 오빠랑 맨날 강물에 들어간다. 오빠가 헤엄을 가르쳐준다. 나는 아직 못한다. 발만 동동 찬다. 오빠가 웃는다.
⟨8월 5일⟩
아버지가 배 한 척을 다 만드셨다. 크고 멋있다. 오빠랑 나를 태워주셨다. 물 위에 둥둥 뜬다. 신기하다. 아버지가 만드신 배는 절대 안 가라앉는다고 오빠가 말했다.
⟨10월 20일⟩
날씨가 쌀쌀해졌다. 어머니가 두꺼운 옷을 꺼내주셨다. 오빠 옷은 작아졌다. 오빠가 많이 컸다. 나도 커야 하는데.
1950년
⟨3월 17일⟩
봄이 왔다. 섬에 꽃들이 핀다. 오빠가 학교 다녀왔다고 책을 보여줬다. 나는 아직 못 읽는 글자가 많다. 오빠가 가르쳐준다. ㄱ ㄴ ㄷ.
⟨6월 28일⟩
오늘 아침부터 어른들이 웅성웅성했다. 전쟁이 났다고 한다.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다. 오빠 얼굴이 심각했다. 아버지와 어머니도 계속 이야기만 하신다.
⟨7월 5일⟩
요즘 밤섬이 시끄럽다.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닌다. 오빠가 나를 집 안에만 있으라고 했다. 밖에 나가면 안 된다고 했다.
⟨12월 3일⟩
추운 겨울이다. 오빠가 어디론가 갔다 왔다. 어디 갔다 왔냐고 물었는데 대답을 안 한다. 어머니가 우신다. 아버지 얼굴이 무섭다.
1951년
⟨1월 20일⟩ 오빠가 집을 떠났다. 군대에 간다고 했다. 나는 울었다. 오빠가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갔다. 금방 돌아온다고 했다. 거짓말하지 말라고 했더니 웃었다. 오빠는 약속을 어긴 적이 없다.
⟨2월 14일⟩
오빠 소식이 없다. 아버지는 배만 만드신다. 어머니는 강가에 앉아서 먼 곳만 바라보신다. 나도 같이 바라본다. 오빠가 보이지 않는다.
⟨4월 8일⟩
따뜻한 날씨인데 마음이 춥다. 오빠가 있으면 같이 물에 들어갔을 텐데. 혼자 물가에 서 있었다. 발만 담갔다.
⟨8월 30일⟩
어른이 우리 집에 왔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그 사람과 이야기를 했다. 그 사람이 가고 나서 어머니가 주저앉으셨다. 소리가 이상했다. 울음소리 같지 않은 울음소리였다. 아버지는 아무 말도 안 하신다.
⟨9월 1일⟩
오빠가 돌아오지 않는다. 어머니가 말을 안 하신다. 아무 말도. 나는 이해가 안 된다. 오빠가 왜 안 오는지. 약속했는데.
⟨9월 10일⟩
아버지가 이상하시다. 매일 창문으로 밖을 보신다. 혹시나 하고 오빠를 기다리시는 것 같다. 어머니는 말을 안 하신다. 아무 말도.
⟨9월 15일⟩
아버지가 배 만드는 걸 그만두셨다. 작업장에 가시지 않는다. 하루 종일 방에만 계신다. 어머니는 여전히 말이 없으시다. 나도 요즘 말이 줄었다. 할 말이 없다.
1952년
⟨2월 15일⟩
아버지가 눈을 못 보신다. 어느 날부터인가 아버지가 벽에 부딪히시기 시작했다. 강 건너 의사를 불렀다. 의사가 말했다. 실명이라고. 슬픔이 너무 커서 눈이 감겼다고. 나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슬픔으로 눈이 먼다는 게 말이 되나. 하지만 아버지를 보면 알 것 같다. 아버지는 더 이상 세상을 보고 싶지 않으신 것이다.
⟨3월 10일⟩
어머니가 아프시다. 자리에 누워 계신다. 내가 물을 갖다 드렸다. 어머니가 나를 보셨다. 그런데 나를 보시는 게 아닌 것 같았다. 어머니 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5월 3일⟩
아버지의 손을 잡고 집 안을 걷는다. 여기 문턱이 있어요. 여기 계단이에요. 조심하세요. 나는 이제 아버지의 눈이 되었다. 열네 살의 눈. 아버지는 내 목소리에 의지해서 걷는다. 오빠가 있었으면 좋겠다. 오빠가 있었으면 이렇게 무섭지 않았을 텐데.
⟨5월 22일⟩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장례를 치렀다. 사람들이 왔다 갔다. 나는 울지 않았다. 울음이 나오지 않았다. 아버지도 울지 않으셨다. 우리는 그냥 거기 서 있었다.
⟨10월 7일⟩
이제 집에는 아버지랑 나뿐이다. 아버지는 말씀이 없으시다. 나도 말을 안 한다. 밥을 먹고 잠을 자고 일어나고. 그렇게 하루가 지나간다.
⟨11월 20일⟩
아버지의 카메라를 발견했다. 먼지가 쌓여 있었다. 아버지가 눈을 못 보시게 된 이후로 아무도 만지지 않은 것 같다. 나는 그것을 닦았다. 렌즈를 통해 밖을 봤다. 세상이 다르게 보였다. 아버지가 볼 수 없는 이 세상을 누군가는 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가 보겠다고. 내가 아버지의 눈이 되겠다고.
1954년
⟨4월 2일⟩
아침 일찍 아버지가 나를 깨웠다.
"유월아, 오늘 아버지랑 배 타러 갈래?"
나는 벌떡 일어났다. 아버지와 단둘이 배를 타는 건 오빠가 떠난 후 처음이었다. 아침밥을 먹고 배에 올랐다. 아버지가 직접 만드신 작은 배였다. 모터가 달린 배였다. 아버지는 앞을 보지 못하시니까 내가 방향을 봤다.
"유월아, 조금만 더 왼쪽으로." "이제 똑바로 가거라."
아버지가 물소리와 바람으로 방향을 가늠하시며 말씀하셨다. 우리는 김포 쪽, 한강 이남으로 갔다. 물살이 세지 않은 곳. 고기가 많이 잡힌다고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한참을 가다가 아버지가 그물을 던지셨다. 우리는 기다렸다. 그런데 갑자기 모터 소리가 이상해졌다. 덜컹거리더니 멈췄다.
"아버지, 모터가 안 돌아가요."
아버지가 손으로 모터를 더듬으셨다. 몇 번 만지시더니 한숨을 쉬셨다.
"고장 난 것 같구나."
배는 물살에 떠밀리기 시작했다. 노가 있었지만 물살이 너무 세서 소용이 없었다. 배는 제멋대로 움직였다. 방향을 잡을 수가 없었다.
"유월아, 무서워하지 마라. 괜찮다."
하지만 아버지 목소리가 떨렸다. 배는 계속 떠내려갔다. 얼마나 갔을까. 주변이 너무 조용했다. 사람 소리가 하나도 안 들렸다.
"유월아, 지금 주변에 뭐가 보이니?"
"아무것도 없어요. 강둑에 사람도 없고 집도 없어요."
아버지 얼굴이 새하얘졌다. 그때 소리가 들렸다. 하늘에서. 윙. 윙. 큰 소리였다. 나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봤다. 비행기였다. 은색 몸체. 낮게 날고 있었다. 날개에 별 같은 게 그려져 있었다.
"아버지, 비행기가—"
"미군이다."
아버지가 갑자기 나를 안아 배 바닥에 눕혔다. 그리고 내 위를 덮으셨다. 아버지 심장 소리가 들렸다. 빠르게 뛰고 있었다.
"아버지, 무서워요."
"괜찮아. 아버지가 지켜줄게."
비행기 소리가 머리 위를 지나갔다. 엔진 소리가 귀를 찢을 것 같았다. 배가 흔들렸다. 비행기는 우리 위를 한 바퀴 돌더니 멀어졌다. 하지만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다. 저 멀리서 맴돌고 있었다.
"아버지, 여기가 어디예요?"
"우리가... 군사 분계선 근처에 온 것 같구나.."
나는 무서워졌다.
"우리 죽어요?"
"아니다. 안 죽어."
얼마나 지났을까. 해가 중천에 떴다. 배는 계속 떠다녔다. 나는 노를 저어봤지만 물살이 너무 세서 소용이 없었다. 아버지는 계속 귀를 기울이고 계셨다. 무언가를 듣고 계셨다. 그때 또 소리가 들렸다. 이번에는 배 소리였다. 모터 소리. 점점 가까워졌다.
"유월아, 무슨 소리가 들리니?"
"배 소리요! 배가 오고 있어요!"
"어떤 배냐?"
나는 눈을 크게 뜨고 봤다. 배가 가까워졌다. 배에 사람들이 타고 있었다. 군복을 입은 사람들이었다.
"군인들이에요, 아버지!"
"한국군이냐?"
"네! 우리나라 군인들이에요!"
배가 우리 옆에 섰다. 군인 한 명이 소리쳤다.
"거기 누구십니까!"
아버지가 대답하셨다.
"밤섬에 사는 사람입니다! 배가 고장 나서 표류했습니다!"
군인들이 우리 배에 밧줄을 던졌다.
"잡으세요! 끌어드리겠습니다!"
나는 밧줄을 잡았다. 군인들이 우리 배를 끌어당겼다. 우리 배가 군함에 붙었다. 군인 두 명이 내려와서 우리를 끌어올렸다.
"괜찮으십니까? 다치신 데는 없으세요?"
"네, 괜찮습니다."
한 젊은 군인이 아버지를 보더니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아버지가 앞을 보지 못하신다는 걸 알아챈 것 같았다.
"어르신, 앞이 안 보이십니까?"
"네, 그렇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배를..."
"딸이 눈이 되어줬습니다."
군인이 나를 봤다. "몇 살이에요?
" "열여섯이요."
군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군인이 물었다.
"미군 정찰기를 보셨습니까?"
아버지가 대답하셨다.
"네, 위를 지나갔습니다."
"그래서 우리한테 연락이 왔습니다. 민간인 배가 군사 분계선 근처에 있다고 해서 우리가 인양하러 온 겁니다."
군함은 우리 배를 끌고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밤섬 쪽으로. 군인들이 우리에게 물과 주먹밥을 줬다. 나는 배가 고팠다는 걸 그제야 깨달았다. 해질 무렵 밤섬이 보였다. 우리 집이 보였다. 군함이 밤섬 근처에 섰다. 군인들이 우리 배를 물에 띄워줬다. 모터는 여전히 고장 났지만 노로 저어서 갈 수 있었다.
"조심히 들어가세요. 다음부터는 분계선 쪽으로 가지 마세요."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아버지가 여러 번 고개를 숙이셨다. 나도 인사했다. 군인들이 손을 흔들었다. 군함이 돌아갔다. 우리는 노를 저어 밤섬으로 갔다. 집에 도착했을 때 해가 완전히 졌다. 아버지와 나, 둘만 남은 집이었다. 오빠도 없고 어머니도 없는. 하지만 우리는 무사히 돌아왔다. 밤에 잠자리에 누웠다. 눈을 감으면 비행기 소리가 들렸다. 아버지가 나를 감싸던 느낌이 생생했다. 아버지 심장 소리도.
1955년
⟨3월 8일⟩
열일곱이 되었다. 나이는 먹었는데 달라진 것은 없다. 여전히 밤섬에서 산다. 여전히 강물이 흐른다. 오빠가 없는 것도 여전하다. 요즘 나는 아버지의 카메라로 밤섬을 찍는다. 은행나무, 하얀 모래사장, 이웃집 할머니의 얼굴, 강 위에 떠 있는 버들가지. 모든 것을 찍는다. 아버지에게 설명해드린다. 오늘은 해가 참 예뻤어요. 강물이 황금빛으로 반짝였어요. 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이신다. 보이지 않아도 내 목소리로 보시는 것이다.
⟨4월 3일⟩
아버지는 요즘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가끔 손을 움직이신다. 나무를 만지신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면서 조금 안심한다.
⟨8월 18일⟩
강물을 보고 있으면 오빠 생각이 난다. 오빠가 물속에 있는 것 같다. 헤엄을 가르쳐주던 오빠. 물고기를 잡아주던 오빠. 나를 업어주던 오빠. 다 물속에 잠겨있다.
⟨12월 25일⟩
성탄절이다. 아버지와 둘이 저녁을 먹었다. 말이 없었다. 먹고 나서 설거지를 했다. 밖에 눈이 내렸다. 하얗다. 밤섬이 하얗게 덮였다.
1958년
⟨5월 15일⟩
바람이 분다. 강물 냄새를 머금은 익숙한 바람이 치마폭을 들썩였다. 이 바람을 나는 스무 해 동안 맡아왔다. 태어날 때부터 지금까지, 이 섬의 바람은 늘 같은 냄새였다.
강 건너 마포 일대가 햇살에 아른거린다. 드문드문 기와지붕들이 이따금씩 반짝인다. 오늘 제1한강교 개통식이 있었다고 했다. 전쟁으로 끊어졌던 다리가 다시 이어졌다니. 저쪽도 사람 사는 곳이고, 이쪽도 사람 사는 곳인데, 물 하나를 사이에 두고 세상이 이렇게 다르다.
부부로 보이는, 푸른 옷을 입은 두 사람이 나란히 서서 강물을 따라 걷고 있다. 낯선 사람들이다. 아마 서울에서 왔을 것이다. 그들의 발밑으로 물결이 밀려왔다 물러갔다, 모래에 발자국이 새겨졌다가 지워지기를 반복했다.
용아머리 아래 바위가 살며시 물속에 잠겨 있다. 어릴 적 아버지와 함께 저 바위에 앉아 물고기를 잡던 기억이 난다. 오빠는 저 바위에서 뛰어내려 수영을 했고, 어머니는 백사장에서 빨래를 했다.
해가 서쪽으로 기울어 강물이 천천히 분홍빛으로 물들어간다. 저녁밥 짓는 연기가 집집마다 가느다란 실처럼 하늘로 피어오른다. 아버지가 부르는 소리가 들릴 듯하다.
발밑의 모래가 아직 따뜻하다. 나를 맞는 강바람도 부드럽다.
1960년
⟨6월 10일⟩
스물둘이 되었다. 세상이 많이 변했다고 사람들이 말한다. 나는 잘 모르겠다. 밤섬은 그대로인데. 강물도 그대로 흐르는데. 요즘 육지에서 사람들이 많이 온다. 밤섬을 구경한다고. 배를 타고 온다. 신기한 곳이라고 한다. 우리에게는 그냥 집인데.
⟨9월 20일⟩
아버지가 많이 늙으셨다. 머리가 희끗희끗하시다. 허리도 굽으셨다. 배 만드는 일도 이제 거의 안 하신다. 가끔 강가에 나가 앉아 계신다. 나도 옆에 앉는다. 우리는 말없이 물을 본다.
1965년
⟨3월 2일⟩
서울시에서 사람들이 왔다. 밤섬을 없앤다고 한다. 폭파한다고 한다. 여의도 제방 공사를 위해서. 국가의 발전을 위해서. 무슨 소리인가 싶었다. 우리 집을. 우리가 태어나고 자란 이곳을. 없앤다고. 다른 곳으로 이주시켜준다고 했다. 보상을 해준다고 했다. 그런 말들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아버지는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
⟨7월 15일⟩
밤섬 사람들이 모였다. 다들 어찌할 바를 모른다. 어떤 이는 화를 내고 어떤 이는 운다. 나는 그냥 서 있었다. 이미 모든 것을 잃어본 사람은 또 잃는 것쯤은 담담하다.
⟨11월 8일⟩
밤섬을 걷는다. 구석구석을 걷는다. 오빠랑 뛰어놀던 곳. 어머니랑 빨래하던 곳. 아버지가 배를 만들던 곳. 눈에 다 담아둔다. 사라질 것들이니까.
1968년
⟨2월 9일⟩
내일이다. 내일 밤섬이 사라진다. 짐을 쌌다. 많지 않다. 오빠의 옷 한 벌. 어머니의 비녀. 아버지의 연장 몇 개. 그리고 우리의 기억들. 그것도 짐에 넣을 수 있으면 좋겠다. 아버지는 하루 종일 강가에 앉아 계셨다. 저녁때 돌아오셔서 "떠나자"고 하셨다. 아버지 목소리가 갈라졌다. 그동안 한 번도 우시지 않던 아버지가.
⟨2월 10일⟩
거대한 폭파 소리가 들렸다. 쾅. 쾅. 쾅. 밤섬이 무너졌다. 흙먼지가 피어올랐다. 오빠가, 어머니가, 우리의 모든 날들이 그 먼지 속에 있었다. 와우산으로 왔다. 성한 곳이 없다. 서울시의 약속은 어디에도 없다. 보상도 없다. 집도 없다. 아무것도 없다.
⟨2월 15일⟩
일을 찾고 있다. 무엇이든 해야 한다. 살아야 하니까. 밤에 강물 소리가 그립다. 밤섬의 바람 소리가 그립다. 이곳에는 자동차 소리만 시끄럽다. 잠이 오지 않는다. 아버지가 기침을 하신다. 나는 일어나 물을 드린다. 아버지의 손이 내 손을 찾는다. 우리는 어둠 속에서 손을 잡고 있다.
⟨3월 15일⟩
공장 일을 알아보러 다닌다. 밤섬의 정유월은 여기서 아무 쓸모가 없다. 사진 찍는 것도 쓸모가 없다. 살기 위해서는 움직여야 한다.
⟨3월 20일⟩
공장 일을 구했다. 아침 일찍 나가서 밤늦게 돌아온다. 손이 부르트고 허리가 아프다. 그래도 견딘다. 아버지가 더 힘드실 텐데. 와우산 판잣집에서 사는 사람들은 다들 비슷하다. 무언가를 잃은 사람들. 어디선가 쫓겨 온 사람들. 우리는 서로 말을 하지 않아도 안다.
1970년
⟨5월 3일⟩
일기를 오랜만에 쓴다. 쓸 여력이 없었다. 일하고 먹고 자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공장 일은 고되다. 손이 부르트고 허리가 아프다. 하지만 견딘다. 아버지가 많이 약해지셨다. 기침을 하신다. 병원에 가시자고 해도 괜찮다고만 하신다. 나는 돈을 더 벌어야 한다.
⟨12월 31일⟩
한 해가 간다. 밤섬이 폭파된 지 벌써 3년이 되어간다. 시간은 빠르게 지나가는데 우리의 삶은 제자리다.
1975년
⟨4월 10일⟩
서른일곱이 되었다. 중년이다. 거울을 보면 낯선 얼굴이 보인다. 주름이 생겼다. 머리에 흰머리도 보인다. 언제 이렇게 늙었나. 아버지는 더 늙으셨다. 이제 거의 움직이지 못하신다. 나는 아버지를 부축해서 밖으로 나간다. 햇볕을 쬐게 해드린다.
한 남자를 만났다.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이다. 그는 내 모든 것을 안다. 밤섬의 상처, 오빠의 죽음, 아버지의 어둠. 그 모든 것을 이해하고 받아준 사람이다. 처음에는 믿을 수 없었다. 나 같은 사람을 받아줄 사람이 있다는 것이. 하지만 그는 진심이었다.
1977년
⟨1월 5일⟩
그와 결혼하기로 했다. 서른아홉의 나이에. 늦은 나이다. 하지만 이제라도 누군가와 함께할 수 있다는 것이 감사하다. 와우산 판잣집에서 조용하게 식을 올릴 것이다. 너무나 소박하게. 마치 우리의 인생처럼.
남편이 신혼여행으로 제주도를 가자고 했다. 한라산을 오르자고. 처음 가보는 땅, 처음 오르는 산. 우리가 함께 새로 시작하는 의미로. 나는 기꺼이 받아들였다. 그래, 새로 시작하는 거다. 마흔의 나이에.
⟨9월 4일⟩
일요일 아침. 장구목이라고 불리는 넓은 들판을 지나 서북벽 입구에 다다랐을 때, 나는 숨이 멎는 줄 알았다. 이미 산 전체가 사람으로 뒤덮여 있었다. 수천의 인파가 마치 거대한 파도처럼 산을 에워싸고 있었다. 밑을 내려다보니 사람들의 머리만 보였다. 남자들의 상의 색깔, 여자들의 모자, 아이들의 목소리. 모든 것이 하나의 살아있는 조각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내 손에 들린 아버지의 카메라가 유난히 무겁게 느껴졌지만 셔터를 눌렀다. 이 모습을, 이 순간을 담고 싶었다. 오랜만에 카메라를 들었다. 오랜만에 세상을 렌즈로 바라봤다. 그리고 깨달았다. 나는 여전히 찍고 싶은 것이다. 여전히 보고 싶은 것이다. 살아있는 것이다.
서북벽 입구에서 밑을 내려다본다. 수천의 사람들이 한라산을 오르고 있다. 저마다의 사연을 들고, 저마다의 목표를 가지고. 누군가는 건강을 기원하고, 누군가는 사랑을 확인하고, 누군가는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려 왔을 것이다. 나처럼, 슬픈 과거를 뒤로하고 새로운 시작을 꿈꾸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카메라를 든 손이 자꾸 떨린다. 이 순간이 너무나 아름답고, 동시에 너무나 슬프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들의 발걸음이 보인다. 모든 사람들의 호흡이 들린다. 우리는 모두 어디론가 가고 있다. 멈출 수 없다. 멈추면 안 된다. 계속 나아가야 한다.
사진 속에 우리가 있다. 손을 잡은 채 한라산을 올라가는 우리가. 아버지가 보지 못했던 세상. 오빠가 더 이상 걸을 수 없게 된 땅. 그리고 나는 지금 그곳에 서 있다. 살아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셔터음이 울린다. 또 하나의 순간이 내 카메라에 담긴다. 이 사진을 아버지에게 보여드려야겠다. 아버지가 볼 수는 없겠지만, 내 목소리로 설명해드려야겠다. 얼마나 아름다운 산인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여기 서 있는지, 그리고 내가 얼마나 행복한지를.
나는 여기 있다. 남편의 손을 잡은 채, 숨을 쉬고 있다. 밤섬의 폭파음은 이제 희미할 만큼 멀어졌고, 오빠의 전사 소식도 세월 앞에서 흐릿해졌다. 남아있는 것은 오직 이것뿐이다. 남편과 함께 한 발씩 올라가는 이 감각. 파란 하늘을 향해 나아가는 이 행진.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카메라에 담는 이 순간의 기쁨.
아버지, 오빠, 어머니, 내 모든 사랑하는 사람들. 나는 여기서 당신들을 기억한다.
1978년
⟨10월 14일⟩
오늘 남편이 나를 그렸다.
저녁을 먹고 설거지를 하는데 남편이 불렀다.
"여보, 잠깐 이리 와 봐요."
거실로 갔더니 남편이 작은 캔버스를 무릎에 올려놓고 앉아 있었다. 손에는 연필이 들려 있었다.
"뭐 하시려고요?"
"당신 얼굴을 그리고 싶어요."
나는 웃었다.
"제 얼굴을요? 이 주름진 얼굴을요?"
"네. 이 아름다운 얼굴을요."
남편은 진심이었다. 나는 어색했지만 남편이 가리킨 의자에 앉았다.
"어떻게 앉아요?"
"편하게 앉으면 돼요. 자연스럽게."
나는 가만히 앉아 있었다. 남편이 캔버스를 응시했다. 그리고 나를 보았다. 다시 캔버스를 보았다. 연필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어색했다. 누군가의 시선을 받는다는 것이. 남편의 눈이 내 얼굴을 훑었다. 이마를, 눈을, 코를, 입을. 마치 처음 보는 것처럼 자세히 보았다. 나는 얼굴이 뜨거워졌다.
"긴장하지 마요."
남편이 웃으며 말했다.
"그냥 편하게 있어요. 밤섬 생각해도 되고."
밤섬. 그 말에 마음이 풀어졌다. 나는 눈을 감았다. 밤섬이 떠올랐다. 강물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바람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오빠가 웃고 있었다. 어머니가 빨래를 하고 계셨다. 아버지가 배를 만드셨다.
"그래요, 그 표정."
남편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천천히 눈을 떴다. 남편이 집중해서 그리고 있었다. 연필 긋는 소리만 조용히 울렸다. 사각사각. 리듬이 있었다. 시간이 흘렀다. 얼마나 지났을까. 다리가 저려왔다. 하지만 움직이지 않았다. 남편의 얼굴을 보았다. 진지했다. 내 얼굴을 보다가 캔버스를 보다가. 손이 쉬지 않고 움직였다.
"이제 거의 다 됐어요."
남편이 말했다. 몇 번 더 선을 긋더니 연필을 내려놓았다.
"다 됐어요. 보실래요?"
나는 일어나서 남편 옆으로 갔다. 캔버스를 보았다. 거기 내가 있었다. 연필로 그린 나. 마흔 살의 정유월. 숨이 멎었다. 남편이 본 나는 이런 모습이었구나. 눈가에 주름이 있었다. 이마에도 선이 있었다. 입가에 웃음기가 남아 있었다. 하지만 슬퍼 보이기도 했다. 아니, 슬픔을 품고 있지만 그래도 살아있는, 그런 얼굴이었다.
"예쁘죠?"
남편이 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말이 나오지 않았다. 남편이 내 손을 잡았다.
"당신은 강해요. 그래서 예뻐요."
나는 울 것 같았다. 참았다. 대신 남편을 안았다.
"고마워요."
그것밖에 말할 수 없었다. 한참을 보았다. 거기 내가 있었다. 남편이 뒤에서 나를 안았다.
"당신 얼굴을 기억하고 싶었어요. 언제까지나."
"왜요? 매일 보잖아요."
"그래도요. 혹시 모르니까. 기록해두고 싶었어요."
나는 남편의 손을 꼭 잡았다. 우리는 그렇게 서서 내 얼굴을 보았다. 연필로 그린 얼굴을. 사랑으로 그린 얼굴을. 아버지의 카메라로 그 그림을 찍었다. 나중에 현상해서 간직해야겠다. 남편이 그린 나를. 남편이 본 나를. 남편이 사랑한 나를. 오늘은 특별한 날이었다. 누군가 나를 이렇게 자세히 본 날. 누군가 나를 이렇게 기록한 날. 누군가 나를 이렇게 사랑한 날. 일기를 덮는다. 내일 아침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그 그림을 볼 것이다. 그리고 웃을 것이다. 나는 여기 있다고. 살아있다고. 사랑받고 있다고.
1980년
⟨1월 1일⟩
새해다. 마흔둘이다. 반평생을 살았다. 남편과 함께 사는 삶에 익숙해졌다. 여전히 공장에서 일한다. 남편도 일한다. 우리는 함께 아침을 먹고 함께 나간다. 저녁이 되면 함께 돌아온다. 소박하지만 행복하다. 아버지도 우리와 함께 산다. 남편은 아버지를 친아버지처럼 모신다.
가끔 꿈을 꾼다. 밤섬의 꿈을. 오빠가 웃으며 손을 흔든다. 어머니가 빨래를 하신다. 아버지가 배를 만드신다. 아버지의 눈이 보인다. 꿈속에서는 아버지가 보신다. 강물이 반짝인다. 꿈에서 깨면 젖은 베개가 있다. 남편이 내 등을 토닥인다.
⟨4월 21일⟩
오늘은 특별한 날이었다. 아침 일찍 남편과 함께 한강 고수부지로 나갔다. 아버지의 카메라를 가방에 넣었다. 오랜만에 밤섬을 보러 가는 길이었다.
고수부지에 도착했을 때 햇살이 강물을 비추고 있었다. 멀리 밤섬이 보였다. 아니, 밤섬이었던 곳이 보였다. 12년 전 폭파된 그 자리에 작은 섬이 다시 솟아 있었다. 자연은 그렇게 스스로를 회복하는 것인가. 인간이 폭파시킨 땅 위에 풀들이 자라고 새들이 날아다니고 있었다. 나는 오랜만에 아버지의 카메라를 들었다. 렌즈를 통해 밤섬을 바라봤다. 손이 떨렸다. 감정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오랜만에 카메라를 드는 것이 낯설어서였는지 모르겠다. 천천히 초점을 맞췄다. 밤섬이 렌즈 안에 들어왔다. 예전의 그 밤섬은 아니었다. 하지만 여전히 거기 있었다. 사라졌지만 사라지지 않은. 죽었지만 다시 살아난. 셔터를 눌렀다. 찰칵. 그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한 장. 두 장. 세 장. 나는 계속 찍었다. 다른 각도에서, 다른 빛으로, 다른 거리에서. 마치 처음 카메라를 들었을 때처럼. 마치 아버지가 볼 수 있게 해드려야 한다는 사명감을 처음 느꼈을 때처럼. 남편이 내 옆에 서서 말없이 지켜봤다. 그는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았다. 내가 무엇을 보고 있는지 알았다. 그래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옆에 있어줬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강바람이 불어왔다. 12년 전 그날도 이런 바람이 불었을까. 폭파 소리와 함께 흙먼지가 날리던 그날도. 나는 눈을 감았다. 기억이 밀려왔다. 오빠의 웃음소리. 어머니의 빨래 소리. 아버지의 톱질 소리. 모든 것이 바람에 실려 왔다가 사라졌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라디오를 켰다. 뉴스가 나왔다. 강원도 사북에서 광부들이 항쟁을 일으켰다는 소식이었다. 부당한 처우에 맞서 싸우고 있다고 했다. 수천 명의 광부들이 거리로 나왔다고 했다. 경찰과 대치하고 있다고 했다. 나는 라디오 소리를 들으며 생각했다. 저 광부들도 나와 같을 것이다. 빼앗긴 것들이 있을 것이다. 무너진 것들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싸우는 것이다. 자신들의 자리를, 자신들의 삶을, 자신들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밤섬도 그랬다. 우리도 그랬다. 하지만 우리는 싸울 수 없었다. 그저 쫓겨날 뿐이었다. 폭파되는 것을 바라볼 뿐이었다. 저 광부들은 용감하다. 나보다, 우리보다.
집에 도착해서 아버지께 말씀드렸다. 오늘 밤섬을 다녀왔다고. 사진을 찍었다고. 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이셨다. "어땠느냐"고 물으셨다. 나는 대답했다. "여전히 거기 있었어요. 달라졌지만, 여전히 거기 있었어요." 아버지는 웃으셨다. 오랜만에 보는 아버지의 미소였다. 저녁 식사 후 필름을 현상소에 맡기러 갔다. 오랜만에 맡기는 필름이었다. 현상소 주인이 물었다. "무슨 사진이에요?" 나는 대답했다. "집 사진이요. 제가 태어난 집." 일주일 후에 찾으러 오라고 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일주일. 일주일 후면 밤섬의 모습을 다시 볼 수 있을 것이다. 사진으로. 영원히 남을 사진으로. 사북의 광부들도 기억될 것이다. 그들의 싸움도 기록될 것이다. 누군가는 그들을 찍을 것이고, 누군가는 그들을 쓸 것이다. 그렇게 역사는 만들어지는 것이다. 나도 역사의 일부다. 밤섬도 역사의 일부다. 우리는 사라지지 않는다.
⟨6월 25일⟩
한국전쟁이 일어난 지 30년이 되었다. 라디오에서 그런 이야기를 한다. 30년. 오빠가 떠난 지 30년. 오빠는 영원히 스물이다. 나는 마흔둘이 되었는데. 이제는 내가 오빠보다 나이가 많다. 이상한 일이다.
밤섬이 폭파된 지도 12년이 되었다. 12년. 세월이 흘렀다. 상처는 아물었을까. 모르겠다. 어떤 상처는 아물지 않는다. 그저 익숙해질 뿐이다. 4월에 찍은 밤섬 사진을 액자에 넣어서 거실에 걸었다. 아버지는 보실 수 없지만 나는 매일 본다. 그리고 아버지께 말씀드린다. 오늘도 밤섬이 거기 있다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고.
⟨8월 20일⟩
오랜만에 한강에 갔다. 남편과 함께. 멀리서 밤섬이 보였다. 아니, 밤섬이 있던 자리가 보였다. 물 위로 조금 솟아있다. 풀들이 자라고 있었다. 새들이 날아다녔다. 한참을 서서 바라봤다. 남편이 내 손을 잡았다. 사람들이 지나갔다. 아무도 그곳을 쳐다보지 않았다. 그곳이 무엇이었는지, 누가 살았는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무도 모른다. 나만 기억한다. 나만 안다. 그것으로 충분한가.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기억하는 한, 밤섬은 사라지지 않은 것이다. 오빠도, 어머니도, 아버지의 눈도. 모두 내 안에 살아있는 것이다. 카메라를 들었다. 밤섬이 있던 자리를 찍었다. 셔터음이 울렸다. 이것도 기억해야 한다. 사라진 것까지도.
⟨12월 31일⟩
또 한 해가 간다. 남편과 둘이 앉아서 지나간 한 해를 돌아본다. 많은 일이 있었다. 좋은 일도, 나쁜 일도.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여기 있다. 함께 있다. 일기를 덮는다. 내일은 또 쓸 것이다. 살아있는 한 써야 한다. 증인이 되어야 한다. 밤섬의, 오빠의, 어머니의, 아버지의. 그리고 나의. 우리는 사라지지 않는다. 기억되는 한.
1982년
⟨11월 3일⟩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어제 새벽이었다. 조용히, 평화롭게. 마치 잠드시듯이.
장례를 치렀다. 사람들이 왔다. 공장 동료들, 이웃들, 밤섬에서 함께 살았던 몇몇 사람들. 다들 아버지를 기억했다. 배를 잘 만드시던 분이었다고. 과묵하지만 따뜻한 분이었다고. 관을 닫을 때 나는 아버지의 손에 무언가를 쥐어드렸다. 밤섬의 흙이었다. 12년 전 폭파되기 전에 몰래 가져온 흙 한 줌. 그동안 작은 주머니에 담아 간직해왔던 것. 이제 아버지와 함께 가야 할 것 같았다.
"아버지, 이제 집으로 가세요."
내가 속삭였다. 남편이 내 어깨를 안았다.
화장을 했다. 아버지의 유골함을 안고 집으로 왔다. 거실에 모셨다. 밤섬 사진 옆에. 아버지는 이제 영원히 밤섬과 함께 계신다.
밤에 혼자 앉아 있다. 남편은 잠이 들었다. 나는 아버지의 카메라를 꺼낸다. 렌즈를 닦는다. 아버지의 손때가 묻어 있다. 나의 손때도 묻어 있다. 이 카메라가 본 세상은 얼마나 넓을까. 이 카메라가 담은 시간은 얼마나 길까. 오빠가 떠났을 때 아버지의 눈이 감겼다. 그리고 나는 아버지의 눈이 되었다. 이제 아버지가 떠나셨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본다. 여전히 찍는다. 여전히 기억한다.
⟨11월 15일⟩
49재를 지냈다. 절에서 조촐하게. 스님이 독경을 했다. 아버지의 영혼이 좋은 곳으로 가시기를 빈다고 했다. 나는 밤섬으로 가시기를 빌었다. 오빠가 있는 곳으로. 어머니가 계신 곳으로. 집으로 돌아와서 아버지의 유품을 정리했다. 많지 않았다. 옷 몇 벌, 낡은 시계, 연장 몇 개. 그리고 오빠의 사진 한 장. 군복을 입은 스물 살의 오빠. 아버지는 평생 이 사진을 품에 지니고 사셨다. 보지 못하는 눈으로, 하지만 늘 가슴에 품고. 나는 그 사진을 액자에 넣었다. 밤섬 사진 옆에, 아버지 영정 옆에 걸었다. 우리 가족이 다시 모였다. 사진 속에서라도.
1985년
⟨5월 20일⟩
오랜만에 일기를 쓴다. 3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일기를 쓸 마음이 나지 않았다. 무엇을 써야 할지 몰랐다. 하지만 오늘은 써야 할 것 같다. 마흔일곱이 되었다. 거울을 보면 완전히 중년의 얼굴이다. 주름이 깊어졌다. 흰머리가 많아졌다. 손도 거칠어졌다. 공장 일을 20년 가까이 하다 보니 어쩔 수 없다. 요즘 나는 다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한동안 카메라를 만지지 않았다. 카메라를 보면 아버지 생각이 나서 슬펐다. 하지만 어느 날 깨달았다. 카메라를 놓는 것이 아버지를 저버리는 것이라는 것을. 그래서 다시 들었다. 거리를 걷고, 공원을 걷고, 한강을 걷으며 찍는다. 사람들을, 나무를, 하늘을, 강물을. 살아있는 모든 것을. 남편이 좋아한다. 내가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것을. 내가 무언가에 집중하는 모습을. "당신이 사진 찍을 때가 제일 예뻐요"라고 남편이 말한다. 나는 웃는다. 마흔일곱의 여자가 예쁘다니.
1987년
⟨6월 12일⟩
세상이 요동치고 있다. 라디오에서, 텔레비전에서, 거리에서. 민주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학생들이, 시민들이 거리로 나왔다. 최루탄 냄새가 바람에 실려 온다. 나는 카메라를 들고 거리로 나갔다. 무언가를 기록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도 기록되어야 한다고. 명동 거리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젊은이들이 구호를 외쳤다. "독재 타도!" "민주화!" 그들의 얼굴이 빛났다. 희망으로, 분노로, 열정으로. 나는 그들을 찍었다. 주먹을 쥔 손을. 구호를 외치는 입을. 눈물을 흘리는 눈을. 살아있는 것들을. 싸우는 것들을. 경찰이 최루탄을 쏘았다. 연기가 피어올랐다. 사람들이 흩어졌다. 나는 계속 셔터를 눌렀다. 연기 속에서도, 혼란 속에서도. 이것을 기록해야 한다고. 누군가는 봐야 한다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남편이 놀랐다.
"왜 이렇게 늦었어요?"
나는 카메라를 보여줬다.
"기록하고 왔어요. 역사를."
남편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나를 안았다.
"위험해요. 조심하세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나는 알았다. 다시 나갈 것이라는 것을.
⟨6월 29일⟩
대통령이 발표를 했다. 직선제 개헌을 받아들이겠다고. 사람들이 환호했다. 거리에서, 광장에서. 승리의 함성이 터져 나왔다. 나는 그 순간도 찍었다. 울면서 웃는 사람들을. 서로 껴안는 사람들을. 거리에서 춤추는 사람들을. 이것이 민주주의구나, 생각했다. 이것이 시민의 힘이구나. 밤섬이 폭파될 때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저 당할 뿐이었다. 쫓겨날 뿐이었다. 하지만 이 사람들은 달랐다. 싸웠다. 이겼다. 그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줬다. 나는 생각한다. 만약 그때 밤섬 사람들이 이렇게 싸웠다면 어땠을까. 만약 우리가 거리로 나갔다면. 만약 우리가 목소리를 냈다면. 하지만 그때는 그럴 수 없었다. 시대가 달랐다. 우리는 너무 약했다. 이제라도 이렇게 변하는 것이 다행이다. 늦었지만. 나한테는 늦었지만, 다음 세대에게는 늦지 않은 것이다.
1990년
⟨1월 1일⟩
새로운 십 년이 시작되었다. 1990년대. 나는 쉰둘이 되었다. 반세기를 넘게 살았다. 돌이켜보면 기적 같은 삶이다. 전쟁을 겪었고, 오빠를 잃었고, 어머니를 잃었고, 아버지를 잃었고, 고향을 잃었고, 집을 잃었다. 그렇게 모든 것을 잃고도 살아있다. 남편과 함께, 카메라와 함께. 요즘은 공장 일을 줄였다. 나이가 들어서 체력이 예전 같지 않다. 대신 사진을 더 많이 찍는다. 내 삶의 중심이 일에서 사진으로 옮겨가고 있다. 작은 사진 동호회에 가입했다. 나처럼 사진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 한 달에 한 번 모여서 사진을 보여주고 이야기를 나눈다. 처음에는 어색했다. 내 사진을 남들에게 보여주는 것이. 하지만 점점 익숙해졌다. 사람들이 내 사진을 좋아한다. 특히 밤섬 사진을. "어떻게 이런 사진을 가지고 계세요?" 그들이 놀란다. "역사적 자료예요!" 나는 웃으며 대답한다. "그냥 집 사진이에요." 그들은 모른다. 이 사진들에 담긴 것이 무엇인지. 이 사진들이 품은 것이 무엇인지. 하지만 그래도 괜찮다.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1995년
⟨7월 8일⟩
남편이 아프다. 병원에 갔더니 암이라고 한다. 위암. 3기. 수술을 해야 한다고. 항암치료를 해야 한다고.
머리가 하얘졌다. 다시 누군가를 잃는 건가. 또.
남편은 담담했다. "괜찮아요. 이길 거예요." 하지만 나는 안다. 남편도 무섭다는 것을. 떠나고 싶지 않다는 것을. 수술 날짜를 잡았다. 다음 주 월요일. 나는 그때까지 매일 남편의 사진을 찍기로 했다. 웃는 얼굴을, 밥 먹는 모습을, 산책하는 뒷모습을. 모든 것을 담아두기로 했다. 만약을 위해서가 아니다. 남편이 이길 것이다. 살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기록해야 한다. 사랑하는 사람의 모든 순간을.
⟨7월 15일⟩
수술이 끝났다. 8시간이 걸렸다. 나는 병원 복도에 앉아서 기다렸다.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시계가 움직이지 않는 것 같았다.
의사가 나왔다. "잘 끝났습니다." 무릎에 힘이 풀렸다.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의사가 부축해줬다. 중환자실에서 남편을 봤다. 여러 기계에 연결되어 있었다. 숨을 쉬고 있었다. 살아있었다. 나는 남편의 손을 잡았다. 차가웠다. 하지만 맥박이 뛰고 있었다. "고마워요." 내가 속삭였다. "살아줘서.“
⟨12월 30일⟩
한 해가 거의 끝나간다. 힘든 한 해였다. 남편의 투병, 항암치료, 재발의 공포. 하지만 우리는 견뎠다. 함께.
남편의 머리카락이 다 빠졌다. 항암치료 부작용이다. 처음에는 충격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익숙하다. 머리카락이 없어도 남편은 남편이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요즘 남편은 약해졌다. 많이 먹지 못한다. 쉽게 피곤해한다. 하지만 여전히 웃는다. 나를 위해서 웃는다. 나도 웃는다. 남편을 위해서. 우리는 서로를 위해 웃는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버틴다.
1998년
⟨3월 18일⟩
남편이 떠났다. 어제 새벽이었다. 병원에서. 내가 손을 잡고 있을 때. "사랑해요." 남편의 마지막 말이었다. 나는 대답했다. "나도 사랑해요." 남편이 웃었다. 그리고 눈을 감았다. 나는 울지 않았다. 울음이 나오지 않았다. 그저 남편의 손을 잡고 앉아 있었다.
해가 떴다. 창문으로 햇살이 들어왔다. 봄이 오고 있었다. 남편 없는 봄이.
장례를 치렀다. 사람들이 왔다. 동호회 사람들, 공장 동료들, 이웃들. 다들 남편을 좋아했다. 다들 슬퍼했다. 관을 닫을 때 나는 남편의 손에 무언가를 쥐어줬다. 우리가 한라산에서 찍은 사진. 손을 잡고 산을 오르는 우리. 1977년 9월 4일. 그날의 우리.
"고마웠어요." 내가 속삭였다. "행복했어요.“
⟨4월 20일⟩
혼자 사는 것에 익숙해지는 중이다. 아침에 일어나면 옆자리가 비어있다. 밥을 할 때 한 사람 몫만 한다. 저녁에 텔레비전을 보다가 옆을 돌아보면 아무도 없다. 하지만 살아야 한다. 남편이 원할 것이다. 내가 살아가기를. 계속 사진을 찍기를. 계속 기억하기를. 그래서 나는 카메라를 든다. 다시. 거리를 걷는다. 공원을 걷는다. 한강을 걷는다. 그리고 찍는다. 살아있는 것들을. 사라지는 것들을. 영원한 것들을.
⟨6월 10일⟩
예순이 되었다. 환갑이다. 아무도 축하해주지 않는다. 혼자다. 남편도 없고,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고, 오빠도 없다. 모두 떠났다. 나만 남았다. 하지만 이것도 괜찮다. 나는 증인이니까. 마지막까지 남아서 기억해야 하니까. 오늘 밤섬에 갔다. 정확히는 밤섬이 보이는 고수부지에. 혼자. 아버지의 카메라를 들고. 밤섬은 여전히 거기 있었다. 30년 전 폭파되었지만, 다시 솟아올랐다. 자연은 그렇게 회복한다. 인간이 무너뜨려도, 다시 일어선다. 나도 그렇다. 무너지고, 쓰러지고, 부서져도, 다시 일어선다. 살아야 하니까. 기억해야 하니까. 셔터를 눌렀다. 밤섬을. 강물을. 하늘을. 그리고 나 자신을. 타이머를 맞추고 카메라 앞에 섰다.
찰칵. 예순 살의 정유월이 사진 속에 담겼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생각했다. 내 인생은 무엇이었나. 상실의 연속이었다. 모든 것을 잃었다. 하지만 동시에 얻기도 했다. 사진을. 기록을. 기억을. 그리고 사랑을. 남편과의 20년. 행복했다. 짧았지만 행복했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12월 31일⟩ 1998년이 끝난다. 20세기가 거의 끝나간다. 나는 이 세기의 대부분을 살았다. 1938년부터 1998년까지. 60년. 많은 것을 보았다. 전쟁을, 폭파를, 독재를, 민주화를. 무너지는 것들을, 일어서는 것들을. 내년이면 새 세기가 온다. 21세기. 나는 그것을 볼 수 있을까. 새로운 천 년을. 모르겠다. 하지만 상관없다. 나는 충분히 보았다. 충분히 기록했다. 벽에 걸린 사진들을 본다. 밤섬. 오빠. 어머니. 아버지. 남편. 내 인생의 모든 것이 거기 있다. 일기를 덮는다. 내년에도 쓸 것이다. 살아있는 한. 마지막 증인으로서. 마지막 기억으로서. 우리는 사라지지 않는다. 기록되는 한. 사랑되는 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