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꼬옥 안아주세요. 


이다슬 작가노트 



색은 바랬지만 아기 코끼리 덤보는 여전히 파아란 하늘을 날고 있었다. 감귤 밭 누군가는 나무 하나를 비닐로 씌워버렸다. 바람이 불면 나무들은 저마다 스산한 소리를 냈는데, 아주 작고 느린 그들의 소리는 이상하리 만치 모든 것들을 압도했다. 모래밭 위에 작은 선인장들과 플라스틱 물병들은 3년째 여전히 그대로다. 소나무가 없는 숲은 넝쿨에 점령당한 지 오래됐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모르고 있다. 어둠으로 뒤덮인 숲 속에서 사람들은 길을 잃어버렸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라 곤 죽어가는 소나무를 베어 태우는 것 밖에 없다. 그것을 베어내는 사람도, 태우는 사람도, 지켜보는 사람도, 기록하는 사람도 모두가 날카롭고 예민하다. 우리는 하늘로 올라가는 자욱한 연기 속에서 매캐한 냄새만을 위안으로 삼는다. 이미 하얗게 변해버린 바닷가 갯바위 언덕 너머에는 거센 바람만 드나든다. 끊임없이 밀려오는 파도 속에는 넘실넘실 괴상한 춤을 추며 사람을 홀리는 초점 없는 눈동자를 가진 이들이 있다. 섬 마을 전체를 진동하며 울리는 소리는 온종일 사람들의 의식을 흔들어 놓는다. 


삶은 모순으로 뒤엉켜 있고 우리는 그 모순들과 살아야 한다. 더하여 풍경사진은 공간의 조직체계라는 차원에서 이해해야만 한다. 그 공간을 누가 소유하고 있고 누가 이용하고 있는지, 어떻게 만들어졌고 어떻게 변형되었는지를 묻지 않으면 풍경 사진의 의미를 알 수 없다. 하지만, 그것을 이해한다면 이제 제주의 풍경이 과거와는 다르지만 여전히 자연스러우면서도 익숙하지 않은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작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비현실적인 상황을 경험했고, 비극적인 곳도 마주쳤으며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심어 놓은 환상을 쫓는 사람들 또한 만날 수 있었다. 방향을 상실한 도시계획은 돈 있는 자들을 위한 정책으로 바뀌었고, 결국 그들에 의해 제주 고유의 풍경은 정체성을 상실하고 말았다. 막대한 자본이 유입되면서 자연은 소유와 정복의 대상으로 변했으며, 인간관계의 사회적 지형 또한 완전히 바뀌고 말았다. 전국 각지에서 불나방처럼 몰려드는 자본의 힘은 그렇게 놀랍도록 치밀하고 유기적으로 작동했고, 도시와 마을은 서서히 황폐해져 갔다. 사람들은 서로 멀어졌고 자연스럽게 누렸던 익숙한 풍경은 이제 돈을 지불해야만 감상할 수 있는 소유물로 바뀌었다. 결국 그들에 의해 동시대의 풍경은 변해왔고 지금도 변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변하겠지만, 불안하고 위태로운 풍경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인간의 속도와 자연의 속도의 차이에서 생겨나는 간격들을 찾아다니며 기록하는 일이다. 어둠이 내려앉은 차가운, 지도에는 없는 그 곳에 낯선 이의 발걸음을 허락하지 않는 메아리 소리가 오랜 시간동안 매섭게 귓가를 스쳐간다. 환한 밤 하늘을 비추는 것은 비단 별 뿐이 아니더라. 


오늘도 시간에 맞춰 숭어들이 나타난다.  

2007 -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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