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드럼씨 이야기
들어가며 본 책은 미 공군 제548 정찰비행대대(548th Reconnaissance Technical Squadron)에 소속되었던 **James Landrum 대위(Capt. J. Landrum)**가 남긴 정찰 기록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기록은 1945년 일본 기지 배치 시점부터 시작하여, 1950년 한국전쟁 발발과 참전, 1953년 정전협정 이후의 항공정찰, 그리고 1956년 귀국에 이르기까지 10여 년 간의 과정을 담고 있다. 원문은 군사적 사실 보고와 개인적 관찰이 뒤섞인 형식을 취하고 있으며, 날짜·시간·위치·고도·기상 조건 등이 세밀히 기재되어 있다. 본 번역은 이러한 원문의 특성을 가능한 한 충실히 옮기되, 일부 군사 용어와 지명은 현대 독자의 이해를 위해 보충 설명을 달았다. 또한 기록 속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동료와 협력자의 역할을 명확히 하기 위해 인물에 대한 간략한 정리를 포함하였다. 조종사, 항법사, 통역병의 존재는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정찰 임무의 실질적 맥락을 드러내는 중요한 요소이다. 본 책은 실제 현장에서 작성된 기록을 편집, 재구성하여 번역한 것이다. 다만 일부 서술에는 기록자의 개인적 시선과 감정이 배어 있어, 당시 한반도의 긴장된 정세와 정찰 장교로서의 고독이 함께 드러난다. 독자는 이를 역사적 자료이자 개인적 증언으로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주요 인물 정리
1. 랜드럼 대위: Capt. J. Landrum 548 정찰비행대대 소속의 항공정찰 사진 장교이자 영상 분석을 전담한 기록자였다.
그는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바로 참전했고, 이후 정전이 성립된 뒤에도 한국에 잔류하며 정찰 임무를 계속 수행했다.
전선의 변화와 휴전 이후의 긴장된 상황을 끊임없이 기록한 그의 임무는, 한국전쟁의 특수한 공기와 시대적 모순을 고스란히 담아내는 역할을 했다.
2. 킴 상병: Corporal Min-Soo Kim(김민수) 서울대학교 지리학과 출신으로, 한국전쟁 발발 후 징집되어 미군 정찰대의 통역병으로 배치되었다.
그는 언어적 역할에 그치지 않고, 지리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군사 정보 해석과 지도 분석을 수행하였다.
한국인으로서 그는 전쟁의 피해와 참상을 직접 목격하며, 단순한 자료 분석을 넘어 민간인의 현실을 이해하는 관점을 임무에 반영할 수 있었다.
3. 윌리엄슨 중사: TSgt. Henry Williamson 미 공군 소속 항공정찰기의 항법사로, 랜드럼 대위와 함께 정찰 임무를 수행하였다.
그는 항로 계산과 기체 내 보조 장비 운용을 담당했으며, 기체의 위치와 경로를 신속하고 정확하게 산출하는 능력이 두드러졌다.
특히 예측하기 어려운 기상 변화나 통신 지연 상황에서도 안정적인 항법을 유지할 수 있어 정찰 임무의 안정성과 효율성을 크게 높였다.
4. 히긴스 중위: 1st Lt. Jonh Higgins 정찰기의 주 조종사로, 저공 비행과 기체 운항을 책임졌다.
그는 임무 수행에서 비행 자체에 몰두하는 태도를 보였으며, 긴장된 작전 환경 속에서도 팀의 균형을 유지하는 역할을 담당하였다.
특히 동료들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두는 책임감이 강해, 위기 상황에서도 조종간을 끝까지 유지하며 임무를 완수하는 모습을 보였다.
...(중략)
1954년 4월 2일 / 금요일 / 오전 11:30 경기도 김포 – 보구곶 일대 / 고도 380m / 기온 16°C / 습도 47% / 맑음 / 서풍 3노트
[기록자: Capt. J. Landrum / 548th Recon Group]
경계는 선이 아니라, 시간에 따라 변하는 색이었다. 논이 말라갈수록, 우리는 그 경계에 새겨진 숨을 읽게 되었다.
보구곶은 1950년 이후 민간인의 접근이 전면 금지된 김포 북단의 농경지 구역으로, 전쟁 중 격전지에서 멀어 비교적 물리적 피해는 적었지만 1951년부터 지속된 군사적 긴장으로 경작은 전면 중단되었다.
이번 정찰은 정전 이후 보구곶 일대의 실제 경작 가능성, 민간 구획 변화, 경계선의 실질적 지형 변동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1차 공중 촬영 비행이었다.
히긴스가 보구곶 상공 380m 고도로 접근하며 말했다. “전체가 마른 논입니다. 수로는 완전히 갈라졌고, 이상하게도 서쪽 구역은 잡풀이 자라지 않아. 누군가 한 번 정리한 흔적 같습니다. 흙이 들떠 있어요.”
그는 남쪽 방향으로 선회하며 “삼각형 모양의 경작지 경계가 겹쳐 있어요. 그건 자연스러운 농사 흔적이 아니라, 뭔가 확인을 위한 표시일 가능성이 있어요.”라고 말했다.
윌리엄슨은 지형 분석 결과, “해안선을 따라 남북으로 흐르는 선형 분할 흔적이 있습니다. 아주 미세한 색 변화인데, 이건 시각적으로만 구분될 수 있는 경계입니다. 위에서만 보이는, 지상에서는 잘 느껴지지 않을 거예요.”
그는 또한 북쪽 경작지에서 직선형 이랑 구조와 비자연적 구획 흔적을 발견하고 “그건 뭔가를 심은 게 아니라, 심으려 했던 흔적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중간에 중단된 것 같습니다. 작업은 오래되지 않았어요.”라고 말했다.
하늘에서 본 보구곶은 그저 빈 논이 아니었다. 경계 너머를 응시하던 사람들의 흔적, 혹은 아직 도착하지 않은 누군가의 첫 발자국이 그 위에 있었다.
[참고] •
김포 보구곶 / 전후 경작 중단 상태 / 경계 구획 일부 재편 흔적 •
마른 수로, 정리된 흙 표면, 이랑 흔적 / 위에서만 보이는 시각적 선형 구획 •
항공 사진 3장 촬영 / 보구곶 일대를 3개로 나누어서 최대한 자세하게 기록
[추가 기록] 정찰 임무 중, 서쪽 해안선 인근 수로 부근에서 소형 목선 한 척이 조류에 떠밀려 표류하는 것을 확인했다.
육안으로는 식별이 불가능하여 윌리엄슨과 함께 망원경으로 확인한 결과, 어린 소녀와 그의 아버지로 추정되는 민간인 부녀가 갑판 위에 가만히 부둥켜 안고 있었다.
배는 조종 불능 상태로 보였으며, 선체는 군사 금지 구역 경계선에 근접한 위치에 있었다. 본부로 즉시 무전을 송신하였고, 복귀 후 인근 지상 부대가 출동하여 두 사람을 안전하게 인도하였다고 보고 받았다.
그날 밤 윌리엄슨이 말하길 민간인 2인은 제한적으로 정부에서 허가한 어업 활동을 하고 있었던 것이라고 했다.
어렵게 어업 허가를 받아 새로 만든 배로 그들의 거주지인 밤섬에서 출발했는데 반나절만에 고장이 나서 보구곶 근처에 표류했다고 했다.
아버지가 어린 딸이 무서워할까 구조를 기다리며 꼭 안아주면서 내내 나를 보는 그 눈빛을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
(중략)...
랜드럼씨 이야기
초판 인쇄: 2025년 8월 12일
초판 발행: 2025년 9월 16일
지은이: 제임스 랜드럼
옮긴이: 이다슬
펴낸이: 이다슬
기획: 최창희 펴낸 곳: 갤러리 우르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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