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스님. 저는 제주도에 살고 있는 이다슬입니다.
제 직업은 농부이자 회사원이면서 미술 작업을 하는 작가입니다.
다름이 아니라 제가 전시를 위해 5년동안 잡초 재배 작업을 해왔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잡초 제거 작업을 위해 잡초들을 베어 없애는 작업을 할 예정인데요, 스님께서 잡초들이 좋은 곳으로 떠나게 해주는 부적을 써 주실 수 있으실까요..?
농담처럼 들리시겠지만 정말 진지하게 작품 활동을 위해, 그리고 이제 제 곁을 떠나가는 잡초들을 위해 소원하고 기원하고 싶습니다. 제 홈페이지는 WWW.LEEDASEUL.COM 이구요, 구글에 이다슬 작가 검색하시면 잡초재배작업에 대한 글들이 조금 있습니다.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 답변
동토부라 하는 부적이 있습니다.
이 부적은 꼭 흙을 다루다가 탈이 난 것뿐만 아니라 나무, 돌, 쇠 등 물건을 다루는 것을 뜻합니다. 이 부적을 써서 지니고 있으면 흙과 잡초들의 안녕을 기약할 수 있으리라 하겠습니다. 또한 그것으로 인한 재앙이 있다면 막아줄 수도 있습니다. 옵션 항목을 작성하신 후 부적 종류에서 맨 아래쪽 맞춤 부적으로 주문하시면 됩니다.
판매자 2023.09.13
스님, 안녕하세요, 작년 9월 제주에서 잡초를 위한 부적을 주문했던 이다슬 작가입니다.
지난 주문에서는 저의 욕심으로 인해 죽임을 당하는 잡초들을 위한 동토부적을 제작해 주셨는데요,
이제 그들과 함께 베어지고 있는 257그루의 아로니아 나무를 위한 부적 제작을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저의 헛된 욕심에서 아로니아 재배를 시작했는데 이제 더 이상 제 힘으로 감당할 수 없게 돼서 모두 하나하나 자르고 있습니다. 베어진 아로니아 나무들이 좋은 곳으로 떠날 수 있게 소원하는 부적이 있을까요? 그리고 이들을 죽이는 제 행위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용서받거나 그 죄책감을 덜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 답변 잘 알겠습니다.
부적종류에서 맞춤부적으로 주문하시면 지금에 맞는 부적을 만들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정토왕생부” 정토란 말 그대로 깨끗한 세계, 곧 부처님이 사는 세계를 말합니다. 그러하니 아끼는 식물들이 부디 좋은 세계, 부처님의 세계에 가기를 기원하니 스님이 정토왕생 할 수 있도록 기도와 참회로 만들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판매자 2024.02.05
수리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
이다슬
시골에 살면서 해보고 싶었던 것 중 하나는 잔디 마당에 크게 누워 눈을 지그시 감고 하늘을 바라보는 것이었다. 닫힌 눈꺼풀로 비치는 바알간 태양이 내 눈동자를 간지럽히는 게 너무 좋았기 때문이다. 잔디를 깔기 위해 여기저기 알아봤지만 비용이 만만치 않았다. 순간, 주변에 널리 보이는 잔디와 비슷하게 생긴 풀들이 눈에 들어왔다. (나중에 잡초를 재배하면서 알게 된 녀석들의 이름은 ‘새포아풀’과 ‘바랭이’, ‘왕바랭이’ 이다.) 녀석들을 심어서 잔디처럼 사랑으로 키우면 되지 않을까 생각을 했다. 그리고 풀들도 잔디처럼 여러 해 동안 오래 살 줄 알았다.
우선 잔디가 놓일 자리에 있던 못생긴 잡초들을 캐서 버리고 땅을 고르게 폈다. 그 다음 집과 밭 주변에 있던 잡초 가운데 최대한 잔디와 비슷하게 생긴 녀석들의 뿌리까지 조심스럽게 캐서 하나하나 옮겨 심기 시작했다. 다섯평도 안 되는 마당 한 자리를 풀로 채우는데 꼬박 일주일이 걸렸다. 매일 정성스럽게 물을 줬다. 동네 사람들이 정신나간 예술쟁이라고 미친 사람 취급을 했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부모님께서도 아들이 잡초를 옮겨 심어서 잔디밭과 같이 꾸민다고 했을 때 많이 말리셨지만 나는 듣지 않았다.) 풀들은 잘 자랐다. 바라만 봐도 행복해지는 푸르른 모습에 하루하루가 뿌듯했지만 날이 선선 해지고 풀들이 씨앗을 품더니 상황이 달라졌다. 아무리 물을 줘도 이미 변해버린 누런 이파리들은 초록색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차가운 바람이 불기 시작하자 정성스럽게 키우던 풀들이 모두 죽었다.
풀을 키우던 당시 나는 막 농사를 시작한 농업인이었다. (물론 지금도 농업인이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변함없이 유지하고 있는 농업에 대한 철학은 그 어떤 화학비료나 농약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잡초 제거 역시 일일이 손으로 뽑을 수밖에 없는데 이 일이 생각보다 아주 고되다. 농업인 치고는 준수한 체격(키 187cm, 몸무게 95kg) 조건을 가진 나에게 쪼그리고 않아서 풀을 뽑는 행위는 허리와 무릎 관절에 매우 큰 자극을 줬다. 그렇게 3년 동안 같은 자세로 매일 풀을 뽑았더니 현재 나의 무릎에는 연골이 없다. 나는 어느새 내가 만든 아이러니한 풍경 속에서 허우적대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 3년 뒤에 곰곰이 생각 해봤다. 이렇게 열심히 뽑아도 어차피 또 풀이 스멀스멀 나올 텐데 왜 나는 몸만 상하는 의미 없는 행위를 매년 반복하고 있을까? 만약 잡초를 키운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농업인이 그의 주적과 함께 하는 것을 넘어 씨앗을 채취하고 재배한다면?)
잡초를 키우기로 작정한 순간부터 마음이 편해졌다. 물론 같은 마을 주민들의 거센 반발도 있었지만 그냥 무시했다. (동네 주민들이 잡초 재배 행위에 들고 일어서는 이유는 매우 간단하다. 내 밭 주변에 있는 삼춘네 밭에도 막대한 영향을 미치기 있기 때문이다. 바람을 타고 잡초 씨들이 퍼지는 것이다.) 꽤 오랜 시간동안 잡초 재배를 했고 한 종류의 풀을 죽이지 않고 3년 넘게 키우기도 했다. 다년생인 잡초를 오랜 시간동안 키우기 위해서는 정말 많은 에너지가 필요했다. 겨울에도 난방을 하지 않는 나는 잡초를 위해 보일러를 가동했다. 또한 보라색 식물 재배등을 최대한 많이 확보해서 밤새 켜 놓았다. 한 달 사용한 등유가 200리터로 약 30만원, 전기료만 7만원에 달했다. 물론 물리적인 에너지와 함께 내가 녀석들에게 쏟아부어야 했던 마음의 에너지도 만만치 않았다.
2023년 가을, 나는 녀석들을 없애고 있다. 아로니아 나무를 휘감아 아예 과수원 형체조차 찾을 수 없게 만들어버린 잡초 밭을 제거하고 있다. 심지어 잡초가 뒤엉켜버린 10년생 아로니아 나무 257그루까지 모조리 자르고 있다. 수 년간 정성스럽게 잡초를 재배해 왔던 사람이 갑자기 이율배반적인 행동을 하고 있다. 십여 년 전 아로니아 농사를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전국에 아로니아 열풍이 불었을 때 농사꾼들은 너도나도 아로니아 나무를 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누구보다 더 빠른 판매를 위해 아로니아 열매의 출하 시기를 앞당겼다. 9월 말에서 10월 초에 수확을 해야 하는 아로니아는 어느덧 8월 초에 수확하는 여름 과일로 변신했다. 출하가 당겨진 만큼 아로니아는 숙성되지 않은 채 떪은 맛을 가진 과일이 되어 버렸고 약 5년 후, 시장에서 차츰 사라지기 시작했다. 소비자들은 더 이상 맛없는 과일을 원치 않았다. 결국 농사꾼들은 자멸했다. 그리고 수많은 아로니아 나무들이 잘렸다. 돈이 되지 않으면 무참히 베어버리는 행위는 비참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지극히 현실적인 풍경이기도 하다.
다시 돌아와 이야기를 해보면 나는 잡초 밭으로 변해버린 아로니아 과수원을 내가 마음속으로 상상만 해봤던 공간으로 바꾸고 있다. 법적으로 "밭"이기 때문에 과실수를 심거나 작물을 재배해야 하지만 이미 이곳에는 억새가 자라고 있고 벚나무가 많이 들어섰다. (아마 지나가는 직박구리나 까치가 버찌 열매를 먹고 씨앗이나 똥을 싸서 벚나무가 자라는 게 아닌가 싶지만 아무렴, 어떨까?) 나는 이곳에 여러 종류의 나무를 심을 계획이다. 내가 심지 않은 나무와 내가 심은 나무들이 함께 공존하는 새로운 풍경을 보고싶다. 그리고 모순적인 상황을 지속적으로 보여주고 싶다. 익숙하지만 자연스럽지 않게 존재하는 우리들을 둘러싼 알 수 없는 풍경들을 확장해보고 싶다. 뽑고 또 뽑아도 다시 자랄 것을 알면서도 이듬해 다시 잡초를 뽑아야만 했던 사람. 그는 또 다른 모순적인 풍경을 재현하기 위해 새로운 모순을 만들고 있다.
쓸모없는 아름다움을 위하여
제주 태생인 이다슬은 2012년 서울생활을 정리하고 다시 제주로 돌아온다. 감나무 밭이었던 600평 제주 땅에 참깨 농사를 시작했다. 주변에서 모두 반대했지만 농업에 대한 본인의 확고한 철학대로 유기농 농법 을 사용하기로 한다. 참깨 순이 올라오자 잡초가 따라 올라온다. 조금 더 자라면 참깨와 잡초가 구분이 될 테니 그때 잡초만 뽑으면 되겠지 생각했다. 한, 두 달 지나니 참깨가 꽤나 자랐다. 그리고 참깨 주위에 잡초도 함께 자랐다. 참깨와 잡초 모두 엉키고 설켜 구분이 되지 않을 만큼 무성하게 자랐다. 잡초만 뽑 아내려고 애를 썼지만 이미 뿌리까지 엉켜 참깨가 같이 뽑히는 참사가 발생했다. 간신히 모은 참깨로 얻 은 참기름은 대략 큰 소주병 5개에 담겼다. (통상적인 기준으로 600평에서 재배한 참깨에서는 소주병 50 개 양의 참기름을 수확할 수 있다고 한다.) 농약을 사용하지 않고 참깨와 잡초를 함께 기른 결과다.
참깨 농사를 망친 후 아로니아 재배에 도전해 본다. 257그루의 아로니아 나무를 심었다. 재배를 시작할 즈 음 전국에 아로니아 열풍이 불어 많은 농업인들이 아로니아 나무를 심기 시작했다. 시장 경쟁이 심해지자 장사꾼들은 빠른 판매를 위해 출하 시기를 앞당겼고, 숙성되지 않은 열매는 떫은 채로 판매가 되었다. 소 비자들은 맛이 없고 떫은 아로니아를 외면하게 되었고, 효용가치가 없어진 아로니아는 무참히 잘려나갔다. 그렇게 아로니아 열풍은 사라졌고, 이다슬 작가의 아로니아 역시 판매되지 못한 채 잡초에 휘감겨 형체조 차 찾을 수 없게 되었다.
사실 처음부터 잡초와 농작물을 함께 기를 생각은 아니었다. 농사를 시작하기로 결심했을 때 화학비료나 농약은 쓰지 않기로 다짐했고, 때문에 잡초 제거 역시 일일이 손으로 뽑아야 했다. 열심히 뽑아도 또다시 자라는 잡초덕에 무릎의 연골은 닳아 없어지고, 허리는 망가졌다. 어차피 다시 자라는 잡초를 뽑기 위해 왜 몸만 상하는 의미 없는 행위를 반복하고 있을까? 이다슬은 잡초를 키우기로 결심한다. 쓸모없다고 여 겨지는 잡초만을 위한 밭을 만들기로 한다.
땅을 고르게 만들고 잔디와 비슷하게 생긴 풀을 옮겨 심었다. 잔디밭 같은 푸르른 잡초밭을 만들어 그 위 에 누워 하늘을 보는 상상을 했다. 혹여 다칠까 잔뿌리까지 조심스레 캤다. 그냥 잡초, 풀인 줄 알았던 녀 석들에게도 알고 보니 예쁜 이름이 있었다. ‘새포아풀’, ‘바랭이’, 그리고 ‘왕바랭이’. 사랑으로 돌보니 푸 른색으로 잘 자랐고, 하루하루 뿌듯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풀들은 누렇게 변했고, 아무리 물을 주어도 초 록색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이상한 일이다. 그렇게 열심히 뽑았을 땐 속도 모르고 무성하게 자라더니, 막 상 키우려고 마음먹으니 뜻대로 되지 않았다.
잡초를 ‘잘’ 재배하기 위한 방법을 찾기로 한다. 각종 영장제와 비료, 영양분이 풍부한 흙으로 빚어진 도 예가의 화분, 식물 재배등, 온실이 동원됐다. 그리고 매일 대형 카메라로 잡초의 성장을 촬영하고, 관찰하 고, 재배 일지를 쓴다. 농부에게는 아무런 쓸모가 없는 잡초를 위하여.
이다슬은 무의미한 잡초 재배 프로젝트에 <잡초 배양실>이라는 제목을 붙여 전시를 했다. 정성을 다한 의 미 없는 행위에 가치를 부여하고 예술이라고 말한다. 작가는 농부가 잡초를 재배하는 모순적인 태도에서 인간의 이기심, 인간 중심으로 바라보는 자연에 대한 태도, 모든 것을 효용가치로만 대하는 자본주의의 모 순을 되짚어보고자 한다. 한 때 인기가 많았으나 시장가치가 사라지자 베어버리는 농사꾼, 본인의 농사를 망쳐버린 잡초를 물리적인 힘으로 더 씩씩하게 키우려는 스스로의 태도에서 인간의 아이러니를 발견한다.
이다슬 개인전 《수리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는 제주의 자연을 배경으로 인간의 욕망과 모순을 이야 기한다. 전시는 잡초 재배를 시작으로 잡초 때문에 망쳐버린 아로니아 나무를 베어 버리기까지의 과정을 보여준다. 밑동만 남은 죽은 아로나무는 어린 시절 작가의 꿈이 담긴 일기와 함께 전시된다. <죽은 개망초 와 망초를 위한 1,000개의 식물 영양제 설치>, <잡초로 뒤덮인 아로니아 밭> 등에는 십여 년 동안의 작가 의 노동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잡초를 위한 노동, 아로니아를 위한 노동 모두 이다슬에겐 이유가 있는 행 위이다. 제주도 사람들은 그를 도라짱1이라고 부르지만 의미 없는 행위에 정성을 부여하는 모순적인 자신 의 행위에서 또 다른 의미를 찾아가고 있다.
전시 제목인 《수리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2는 불교 경전인 천수경 첫머리에 나오는 글귀로, 인간의 업을 깨끗이 씻어내기 위한 주문이다. 작가는 애써 키웠던 잡초들과 아로니아 나무를 모조리 잘라버린다. 그 후 <127그루의 아로니아 나무를 자르고 멈춘 전동가위> 기념비를 세운다. 정성껏 키웠던 생명을 죽인 모순적인 행위에 대한 죄책감에서 벗어나고자 수리수리 마하수리 주문을 외운다. 그리고 그들이 좋은 곳 에서 다시 태어나길 바라는 마음으로 스님에게 부적을 구매한다. 온라인 부적 판매 1위 쇼핑몰에서 구매 한 부적을 지갑에 간직하며 아로니아가 극락왕생하길 기도한다. 전시는 모순으로 가득 찬 우리의 이야기 이다.
이다슬은 제주도의 유명인이다. 검질3을 키우는 도라짱으로. 아로니아가 잘려나간 자리에는 심지 않은 벚 나무가 자라났다. 벚나무 위엔 새들이 아로니아 가지로 둥지를 지었다. 억새와 이름 모를 잡초들도 함께 자란다. 인간의 눈에는 쓸모없는 것들이 모여 그들만의 세상을 만들었다. 작가는 이곳에 여러 종류의 나 무를 심을 계획이라고 한다. 작가가 그린 <상상화>처럼 심지 않은 나무와 심은 나무가 공존하는 풍경을 만들 예정이다. 쓸모없는,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쓸모 있는 아름다움을 위하여. 그는 제주에 사는 10년 차 농부이자 예술가이다.
글: 이선미, 대안공간 루프 큐레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