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M.A 


이다슬


(작업노트) D.R.A.M.A에서 내가 시각화 하고자 하는 것은 “시공간timespace”이다. 여기에는 소설과 수필, 그리고 시를 기반으로 하는 문학적 동기가 포함되며 이를 토대로 장소를 설정하고 시각적으로 재현하는데 3D에서 2D, 2D에서 3D로의 시공간적 이동이 교차된다. 그리고 D.R.A.M.A에는 서로 다른 장면들을 찍고 각각의 사진들을 퍼즐놀이 하듯 다시 일렬로 나열하여 새로운 공간을 만드는 과정이 포함되어 있다. 일련의 사진들은 하나씩 자연스럽게 이어지며 이들은 또 다른 장면들을 구성하고 상황을 재현한다. 이는 D.R.A.M.A가 가지고 있는 작업의 형식적 요소를 말하고 있는 것인데, 이를 극대화하기 위해 나는 서로 다른 크기의 사진과 여러 화면으로 이어지는 영상을 통한 설치의 형태로 최종 결과물을 보여준다. 또한, D.R.A.M.A는 공간을 생산하고 생산된 공간에서 배우를 등장시켜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텔레비전 속의 드라마 실제 세트장을 가보면 허술하고 낯설지만 사람들은 인위적인 그것들을 너무나 사실적으로 받아들인다. 이는 드라마 속 배우들이 만들어내는 상황을 누구나 공감하여 같이 슬퍼하고 기뻐하는 것의 배경이 되는 것이다. 즉, 이들이 만들어내는 심리적 상황은 연기이지만 바라보는 사람들은 결과적으로 배우들과 그들을 둘러싼 배경과 사건에 빠져드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각각의 공간에서 느끼는 상황을 장면으로 만들고 여러 장면들을 하나로 모아 D.R.A.M.A를 만든다. 이는 텔레비전 속의 드라마가 보여주는 형식적인 구성과 일치하는 점이 있는데, 실제로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는 공간을 시각적으로 생산해내고 이것을 통해 내가 느꼈던 일련의 감정 상태를 관람자에게 보여주고 느낄 수 있도록 하고자 한다. 


공간은 무의식적 · 초현실적으로 존재하며 이들은 분할되어 있다. 그리고 각각의 장면들의 시간차이는 짧게는 30분, 길게는 일 년을 두고 촬영한 사진인데 이는 서로 다른 시공간에서 이루어진 개별적 사건이 사진을 통해서 최종적으로 어떻게 관람자에게 다가오는지를 보여주기 위함이다. 시공간이라는 비가시적인 미지의 영역은 나에게 궁금증을 유발하는 촉매제와 같은 환경이자 배경이고 사건과 시선은 그 곳, 비밀의 문을 열 수 있는 키가 될 것이다. 


(에피소드) 지금까지 감춰오고 드러내지 못했던 비밀스럽지 않은 비밀 이야기를 D.R.A.M.A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색으로 구성하였다. 적색과 녹색을 구별할 수 없는 눈(적녹색약)을 가진 나로부터 시작되는 그것은 오랫동안 숨겨왔던 나에 대한 이야기이다. 

색맹은 모든 색을 볼 수 없고, 색약은 몇 가지 색을 볼 수 없을 뿐인데도-의학적으로 색맹과 색약은 엄연히 구별되어 부르고 있다- 보통의 사람들은 색맹이라는 말로 잘못 부른다. 중학교, 고등학교 다닐 때 해마다 실시하는 신체검사에는 반드시 색맹검사가 있기 마련인데, 매번 색맹으로 판정받고 생활기록부에 빨간 도장이 6년 동안 찍혔을 때, 그래서 친구들에게 놀림 받았던 그 때의 아픈 기억들은 아직까지도 고스란히 남아있다. 어렸을 때, 그런 검사를 받고서 나는 지금까지도 색을 바라보는 두려움이 있는데 이러한 심리적인 불안감을 D.R.A.M.A 작업을 통해 조용한 목소리로 숨김없이 보여주고자 한다. 그래서 D.R.A.M.A에는 내가 구별할 수 있는 한계점까지의 적색과 녹색이 빠져있다. 이는 내가 바라보는 세상의 모습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대로 보여주고자 함이다. 태어날 때부터 단풍을 볼 수 없는 눈을 가진 청년에 대한 이야기가 시작된다. 


나에게 건물은 도시적 속성을 띠는 내재적 의미를 갖고 있는 건축물이 아니다. 건물은 거대한 입방체로서 존재하며 하나하나가 그들의 성격을 보여주는 독립체이다. 건물을 D.R.A.M.A 작업의 초반에 촬영한 것은 내가 자란 제주도에서는 볼 수 없었던 혹은 경험하지 못했던 오밀조밀 모여 있는 건물들에서 오는 시각적 유희 때문이다. 도시 안으로 들어간다. 안으로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나는 건물로 이루어진 병풍과도 같은 풍경에 휩싸인다. 길을 잃고 방황하며 이곳저곳을 걸어 다닌다. 우리의 눈에 보이는 입방체, 건물들이 때로는 눈 안에 다 들어오기도 하지만 고개를 돌려가며 여러 곳을 봐도 아직 그 건물 밖을 벗어나지 못할 때도 있다. 실재 존재하는 건물들은 D.R.A.M.A를 거쳐 어쩌면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는 입방체로 다시 태어난다. 이 과정에는 망원렌즈를 사용하여 근경과 원경을 압축시키고 시간과 공간을 재구성한 일련의 사진 기술이 개입하는데, 이로써 이들 입방체는 이제 건물이 아닌 종이처럼 평면이 되어 서로 겹쳐진다. D.R.A.M.A에 등장하는 건물사진들은 나의 감수성을 자극하는데 있어서 작지만 아주 강하게 자리 잡는 부분 중에 하나이다.




<나를 둘러싼 알 수 없는 떨림에 관한>은 5개의 장면(scene)을 모은 드라마이다. 익숙한 빌딩들로 구성된 작품과 연관성이 적어 보이는 제목은 사진이 표현하고자 하는 것에 대한 궁금증을 유발한다. 작가는 문학작품의 소재를 토대로 공간을 만들고 그 공간에 주인공을 등장시켜 이야기를 구성한다. 작품 속 풍경의 구도는 실제가 아닌 작가가 만들어낸 것으로 좌우의 구분이 모호한 장면들의 연결은 어딘가 혼란스럽다. 이는 실제로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는 공간을 시각화하여 특정한 장소에서 작가가 느꼈던 알 수 없는 떨림의 감정을 보는 이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것이다. 또한 적색과 녹색을 구별할 수 없는 ‘적녹색약’인 작가가 구별할 수 있는 한계점까지의 적색과 녹색을 그래픽 툴로 빼낸 작품을 통해 그가 바라보는 세상의 색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4th artist mapping, 가나아트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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